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H. W. 부시 (문단 편집) === [[제2차 세계 대전]] 참전 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20px-TBF_GeorgeBush.jpg]] [[1944년]]의 조지 부시 [[제2차 세계 대전]] 참전 용사다. 같은 조종사였지만, [[베트남 전쟁]]의 와중에 [[미합중국 공군]] [[주방위군]] 소속의 본토 비행단에서 군생활을 날로 해 욕먹는 아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. [[미 해군]]에 입대해 [[장교]]로 임관한 그는 [[TBF(M) 어벤저]] [[뇌격기]]의 조종사로 참전했고 자신의 비행기에 약혼녀 바바라 피어스의 이름을 따 바바라라고 불렀다. [[오키나와 전투]] 당시, 오키나와 주변의 섬들을 제압하는 임무를 띄고 출격했다가 일본군 대공포에 격추당했다. 해상에 착수한 부시는 자칫 일본군의 포로 신세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아군기들이 다가오던 [[일본 해군]] 선박을 쫓아냈고, 이후 [[가토급 잠수함]] USS 핀백(Finback)에게 구조된다. 이 구조상황은 실제 영상까지 있어서, 당시 미 해군 잠수함의 주요 임무였던 파일럿 구출(라이프가드)의 미국내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.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N8ZYv2TFnZg|###]]. 한편, 그때 추락한 다른 동료들은 [[일본군]]에 포로로 붙잡히고 '''일본군이 이들을 살해한 뒤 시체를 먹은''' [[치치지마섬 식인 사건]]이 발생한다. 부시 중위는 당시 격추 당한 부대원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고, 구조되지 못하고 포로가 되었다면 그 자신도 잡아먹힐 뻔했다.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전후에 태어난 아들 부시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이 결과로 미국 역사는 [[나비효과|크게 달라졌을 것이란]] 농담이 있다. 이 일로 사적으로는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다. [[히로히토]]의 부고를 들었을 때야 '이제야 일본을 용서할 마음이 조금은 생기는 듯하다'고 할 정도였다. 하지만 사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대통령으로서는 대 소련 포위망 때문에 일본을 [[한국]]과 함께 비 [[NATO]] 주요 동맹국으로 지정할 정도로 일본과의 관계를 중요시했다. 공사 구분은 충분히 한 것이다. 45년 1월에 바바라와 결혼하고, 종전 후 9월에 해군 [[중위]]로 전역한 뒤 [[예일대]]에 입학하여 1948년에 졸업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